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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서를 싫어하는 아이가 왠일로 얌전히 잠들었다.
자면서도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여 안쓰러운 아가다.
아빠란 사람이 자는 아이 옆에서 뭐라 소근거리길래
뭐라 하는가 싶더니,
'다연아, 걱정마. 언제나 옆에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단다. 안심하렴.'

생활소음에 또 놀라며 팔을 휘젓는다.
그 손을 잡아주며 계속 소근거리며 안심시키는 모습이 좀 짠하다.

다연이가 기분 좋을 때 웃는다. 나도 벙긋.

다연이가 기분이 좋지 않을땐 얼굴을 쥐어뜯는다. 안쓰러운 엄마 마음!

70일된 오늘 아기띠에 태웠다.



도원이 갈아놓았다던 집앞 텃밭은
아직 나가보질 못했다. 단 열걸음 정도면 되는 그 거리를. 참 먼 길이다.

 

 

우리 아기, 예쁜 딸

다연이가 55일이 되었다.

다연이와 엄마는 매일 함께 붙어 있으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거겠지.

가끔 보채기도 해서 체력 좋지 않은 이 엄마가 지치기도 하지만

옹알옹알 하고 히죽히죽 웃어줄때면 기운이 보충되니 그리 걱정할바가 못 된다.

생전 처음 생명을 온전히 책임져야함에

어깨와 가슴이 너무 무거워 무서웠던 것도

이제는 편안해진 마음으로 임하니

딸아이를 보듬고 돌보기가 한결 따뜻하고 부드럽다.

 

우리 아가, 어여쁜 딸.

아프지 말고 심신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나렴.

엄마가 응원해 줄께.

 

 

 

 

2월의 햇살이 따듯한 오늘이다.

친정집 베란다에 햇살이 가득인 가운데 누군가 거실창문을 열어 놓았다.

다연이를 안은 채 베란다로 나섰다. 햇살 닿는 피부가 따뜻하다.

그 햇살이 다연이의 긴 머리카락과 부드러운 피부에 내려앉는다.

잠든 다연아, 이것이 햇살이란다.

로즈허브 잎 하나를 따서 비벼본다. 화-한 내음이 피어 오르는 것을 다연이 코 밑에 대어 보았다.

이 냄새는 어떠니, 다연아.

잠들어 있는 아가는 잠시 킁킁 거리다가 잠잠해 진다.

 

아가를 안고

베란다의 짧은 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념에 잠긴다.

지난 25일 동안 다연이를 출산하고 난 직후 내 상황과 마음상태를 반추해 본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까지 육아의 이상적 모습에 매달려 있었음을 하나씩 하나씩 들춰내었다.

 

나는 내가 무척 잘해 나갈 줄 알았던 거다.

자연출산을 했으니 모유수유를 완벽하게 한다면 정말 완벽할 거라고 여겼던 거다.

나는 엄마가 되었으니 아기를 잘 보살피고 울리지 않고

아기의 사인을 즉각 알아 먹는 총명하고 영리한 엄마가 되리라, 그렇게 그림을 그렸던 거다.

그러나 지난 25일 동안 그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 나의 현실이다.

 

모유수유를 하는 것부터 전혀 쉽지 않다.

처음에는 모유양이 부족했었고 잘 나오지를 않았다.

나의 젖꼭지는 아가가 잘 물 수 없는 구조여서 보조기구 도움 없이는 젖을 물릴 수 없는 형국이었다.

게다가 보조기구를 착용함에도 아가가 젖을 물면 물수록 통증이 가중되고 급기야 밤중에는 도저히

아기에게 젖을 물릴 수가 없었다. 밤에라도 덜 물려야 다음날 아가에게 수유를 할 수 있었다.

하루 24시간 내내 가슴 통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니 아기에게 젖을 물리기가 겁이 났다.

 

친정으로 오고나니

아기는 밤잠 투정이 심해졌다.

새벽 2시 전후로 자지 않고 우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친정엄마가 그 시간에 다연이를 어르고 달랬고 나는 기진맥진하여 잠을 자곤 했다.

한마디로 밤중수유를 하기에도 체력은 미달이었다.

엄마가 되어서는 아기가 우는대도 망연자실 할 때도 있었다.

우는 아가를 안으면 더 울기 십상이었고 친정엄마가 안으면 그 울음을 멈추는 우리딸.

그런 새벽이 반복되니 자신감이 고갈되어 갔고 새벽울음이 두려워졌다.

아가가 편할 수 없는 엄마의 품을 지닌 사람이 되어버렸다.

 

수유도

체력도

보살피는 손길도

아이를 달래는 법도

 

정말 안되는 것이 많은 비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이

나였던 것이다.

그런대도 여전히 나는,

"완벽한 수유를 해야해.

밤중에 아이도 거뜬히 보살필 초롱초롱한 정신력을 지녀야 해.

아이의 사인을 즉각 알아 차리는 똑똑한 엄마야 해.

내가 안으면 살포시 잠드는 품을 지녀야 해.

등등등" 의 모습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오후의 베란다를 걸으며 그점들을 곱씹었다.

인정할 것을 인정해야겠다.

나는 그렇게 이상적인 엄마의 소양을 지니지 못했을 지도 몰라.

기술도 부족하고 아는것도 없고 서툴기 그지 없는 초보 엄마야.

어쩌면 아이가 커 가는 내내 시행착오만을 할지도 몰라.

아이를 보살피는 영역에서 나는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야.

그걸 인정할 줄 알아야 해.

헛똑똑이고 어수룩하고 실수투성이일 것을 예상해야 해.

많은 부분에서 완벽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많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해.

지금 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

나는 모르는 것, 못하는 것이 많은 엄마이고

다연이도 모르는 것, 못하는 것이 많은 아이야.

그러니 우리가 완벽한 모녀가 될 수 없어.

그것이 자연스러운 거야.

지금 이 모습이 가장 자연스러운 모녀인 거야.

 

그러니,

조바심을 낼 것도

고쳐야 한다고 아둥바둥 할 것도 없어.

계속 허둥될 것이고 실수 할 것이고 안되는 것이 더 많을 거야.

그게 자연스러운 거야.

자연스러운 거.

 

기다리고

내려놓자.

 

베란다에서 나오고

다연이를 뉘이고

이렇게 각인하듯

적어 내려가며

기억에 새기자.

 

.

 

 

다.연. 모두를 뜻하는 '다'와 '열다'의 활용형 '연'을 합한 이름으로, 사물의 이치나 사람 사이의 복잡한 문제를 탐구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 막힘없이 다 열어 나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지었다.

 

夛.淵. 넓을다에 못연자. 넓은 못이란 한자 뜻도 담아 보았다. 못은 근원, 근본이란 의미도 포함하므로 근원, 근본이 넓고 크다는 의미도 되겠다. 그치만 우리의 바램은 넓은 깊은 근원에 대한 탐구의 의미에서 새겨보았다. 이리 보면 한자 새김이나 한글새김이 얼추 비슷하게 놓인다.

 

다연이의 사주팔자를 살펴보면 일간이 戊戌에 월지가 丑이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당당하게 서 있는 겨울산이라고 할수 있을까? 봄이 오기전의 생명의 에너지가 잠자고 있을 때의 모습. 드러나지 않는 에너지의 집적. 이 기운에 甲과 乙이 년간과 시간에 배치되어 있다. 에너지의 분출이다. 에너지의 집적과 분출이 다연이의 기본 성향이 될거 같다. 부모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다연이의 이 기운을 인정하고 북돋어주되 이 기운을 더 잘 쓸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연이에게 낯선 에너지인 다정다감함의 기운과 가볍고 경쾌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할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이것은 다연이에게 요청한 의미 그대로, '사물의 이치나 사람 사이의 복잡한 문제를 탐구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연습을' 가볍고 경쾌하게 우리 스스로 연습함을 의미한다. 다정다감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경쾌하고 가볍게 있는 그대로 보아주자. 머리속 관념의 다짐이 아니라 슬프면 슬프게 보아주고, 기쁘면 기쁘게 보아주고, 화나면 화남을 알아차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알아주는 것. 아이가 아프면 아픈곳을 찾아나서는 것처럼 세상이 아프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모습.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살아나가는 것이 다연이에게 요청한 삶의 태도를 전달하는 방법이요, 기운을 북돋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가 걷는 발걸음이 다연이에게 길이 될 거라는 거. 물론 언젠가는 어느 지점에서 제 길을 나서겠노라 하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 딱 거기까지.

 

다연아, 언젠가 네가 그 지점에 서서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할 때 나는 정말 기쁘겠구나.

자, 거기까지 우리 셋이 함께 걷자구나.

 

 

 

 

 

 

 

 

다연아

나는 네가 이 엄마의 몸을 빌어서 세상에 나온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련다.

그 뒤에는 아빠가 함께 힘을 실어 주었지.

온전히 너의 힘으로 너는 이 세상에 와 주었구나.

감사하고도 감사하여라.

 

다연아

너를 만나고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곤 했어.

엄마의 마음이 무너지려 할때 너의 아빠가 항상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메마른 나뭇가지에 꽃이 필거라고 알려주었단다.

겉보기엔 말라보이지만 그 안에는 살아있음이 흐르고 있는걸 가르쳐 주었지.

다시 힘을 내고 하나씩 하나씩 격으며 지나가는 것을 이제는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아빠의 힘이었다.

너의 아빠는 그런 분이란다.

 

다연아

나의 가슴에 안을 수 있을 때 너를 실컷 안아보련다.

어느때고 우리의 품에서 나와 네 스스로 세상으로 걸어나가는 그 날이 오겠지.

우리는 기쁠 것이다.

아빠와 엄마 역시 그렇게 세상을 향해 걷고 있으니까.

어디를 가고 있든 간에 우리는 함께이면서 자유롭다.

우리는 이어져 있으니까.

 

사랑하는 다연아

사랑하는 다연 아빠, 도원

매일매일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보련다.

이 엄마의 가슴에 기도의 마음이 한순간도 사라지지 않는 날

 나는 울며 웃을꺼야.

그 모습을 다연이가 보아주기를

그 모습을 도원과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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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월 17일 23시 48분,

을미년 기축월 경술일 경자시에,

우주가 왔다.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다.

기쁘고 감사하고 평화롭다.

이 마음으로 세상에 나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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