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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입원 5일째다. 그리고 퇴원을 한다.
병동의 긴 복도를 돌면서 생각을 하는 것이 이제사 된다.
입원 환자 중에 노인분들이 압도적으로 많다.청소하는 아주머니들과 식사를 가져오는 분, 수액을 담은 수레를 끄는 간호사들도 마주치곤 한다.
환자이든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든 모두가 병과 죽음에 이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병문안을 하러 오는 옆방 남매들도 그렇다. 인간사가 그렇다.
열이 나는 딸아이도 그렇고 아픈 아내와 딸 사이에 있는 남편과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존재다.

이 반복을 그만두길 원한다.
생명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사이에 벌어지는 삶을 계속 반복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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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남원의료원, 종합병원이다.

맹장 수술을 하고 2일이 지나고 있다. 5인실에 누워 각종 액체를 맞으며 금식 중이다. 물조차 마시지 못한지 꼬박 3일이 지나고 있다. 처음엔 심하던 갈증이 덜해졌고 수술부위 통증도 나날이 덜해진다.

다연이는 어제도 아빠와 함께 엄마에게 놀러왔다. 병자들이 지내는 곳인지라 생동감이 거의 없는 장소에서 아이는 놀이감을 잘 찾아 놀았다. 긴 복도는 뛰기에 좋았고 복도의 자판기는 만져도 되는 큰 기계였으며 엄마의 병상 침대마저 아이에겐 놀이터였다. 오전에 내린 비로 생긴 작은 웅덩이에서 찰박 놀이를 하며 온 몸을 적시며 몹시 즐거워했다. 나름 재밌어 하는 아이를 보며 우리는 다행이라고 여겼다. 병원에 와서 내내 지루해하지 않아서.

다음날 아침, 도원으로부터 다연이가 열이 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점점 고열이되고 아이는 축 쳐저있는 것으로 들렸다. 이것저것 해줄수 있는것읒 도원에게 얘기하였고 도원은 수시로 상황을 알려왔다. 아기가 아플 때 부부가 함께 있는것이 서로에게 든든하다는 것을 알기에 불안해할 도원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다연이 곁에서 챙겨줄만한 것들을 제일 잘 아는 내가 그러지못해 마음이 편치가 못하다. 다연이가 아플 땐 꼭 옆에 있어주고만 싶다. 다른 장소에 있는 것은 무척 불편하고 정서가 안정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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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의 다연이는 하나씩 말을 알아듣는다. 이미 상당한 종류의 말을 이해하는 듯 하다.

~을 가져와라. 쓰레기통에 넣자. 우리 갈까?, 씽크대에 넣어요.

이리와~(이 말을 하면 멀리 도망간다),  ~을 해봐. 등등

 

매일 밤잠을 재울때 두런두런 얘기해곤 한다. 엄마 말을 알아듣지 못할 거 같은 아기때부터 해오던 습관이다.

몇몇 단어를 기억하는 지금의 딸아이에게 깜깜한 방에 함께 누워서 오늘은 이랬지, 저랬지 하며 얘기할때

예전과 다소 다른 느낌이 든다.  사뭇 엄마의 말을 다연이가 왠지 알아들을 것 같은 기분이.

엄마의 소근거림이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오늘 우리 다연이 뭐 했지? 토끼 봤지. 깡총깡총 토끼. 토끼도 보고 노래도 들었지. 판소리라는 거야."

 

어쩔땐 계속 뒤척이기만 할뿐 잠을 쉽게 못드는 다연이를 보면 잠들기를 기다리는 엄마 입장에서는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졸리면 자면 되지'가 안되는 딸아이가 안쓰러울때가 더 많다.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건,  진.정.성.을 듬뿍 담아 말을 건내는 것.

"다연아, 이제 코~ 자자. 코 자고 내일 보자. 내일은 (진짜) 즐거운 날이 될거야."

라고 종종 말해주는 것.  

 

'즐거운 날'

이 단어를 말할때 왠지 가슴이 뜨끈해진다.

아마도 진심으로 아이에게 즐거운 내일을 약속해주고 싶은 심정으로 해주는 말이기 때문일 거다.

"다연아, 엄마가 내일 또 즐겁게 해줄께. 화창한 하늘이 있고 시원한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서 가자.

그러면 너는 새로운 것들을 보고 신기해 하며 기뻐할 거 같아.

네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

그러면 너는 많이 웃을 것이고 무척 뛰어다닐 것이고 많은 것을 느끼며 행복해 할 테지.

엄마는 네가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거든.

내일 꼭 그렇게 해주고 싶어."

라고 할 수 있는 길고 긴 엄마의 심정을 고농도로 압축하여 짜낸 진국의 말이

"내일은(혹은 내일도) 즐거운 날이 될거야"

이다.

 

이 말에 폼한된 의미를 나열해 보자면,

1. 엄마는 네가 내일 즐겁고 행복하길 바래.

2. 엄마가 즐거운 경험들을 만나게 해줄께.

3. 그리고 즐거워 하는 너와 함께하는 것이 엄마는 즐겁고 행복해.

4. 너의 행복한 하루는 엄마의 행복한 하루야.

5. 엄마의 내일도 즐거울 거야.

이 정도가 아닐까.

 

잠들어 가는 아이에게 즐거울 수 있는 내일을 약속해 주는

엄마의 마음은 참 묘하다.

한 존재가 온전히 즐겁고 행복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그 마음 중에 변색되지 않을 최고의 마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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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단순하게 살아갈 준비를 해보자
(미니멀 라이프에 근접하기)


시간이 흐를수록 집안에 물건이 많아지고있다. 자연적으로 수납도구가 빈공간에 자꾸 놓아지게 된다.
한차례 물건을 정리하겠다고 나서도 크게 줄어드는 것 같아보이지도 않는다. 마음만 앞서는 것일까, 이상일뿐인가.

긴호흡으로 접근을 해야겠다고 여긴다.
물건을 늘이는동안 들였던 시간과 고민을 하찮게 여기면 안될거 같다. 그건 그거대로 존중하되 내 삶도 존중해가며 물건을 천천히 빼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삶을 느리게 사유하면서.

미니멀 라이프와 관련된 서적을 읽으면서 마음자세를 그려보고있는 중이다. 다연이의 2돌때쯤에는 단순하면서 넉넉한 그런 공간에서 여유로운 마음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을 머리에 그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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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의 코감기는 12일째 지속되고 있고 확신할 만한 호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역시나 잠을 잘때가 문제가 된다. 코가 막히면 잠을 잘 잘 수 없으니까. 신기하게도 예전 때와는 다르게 숨 길을 아이 스스로 찾는다. 잠들었다가도 코가 막히면 일어나 앉아 꺼이꺼이 울었던 아이가 '히힝-' 징징 한번 하고서는 몸을 뒤척이며 숨이 나아질때를 찾아 내는 것이 놀랍다. 가르쳐줄 수 없는 부분인데 스스로 터득하였나보다. 그만큼 또 아이가 컸다는 의미라서 신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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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이 유상균샘네 창고를 지었다. 일을 마치고 축하해 주었는데 다음날 내린 비가 알려주었다. 창고에 물이 샌다는 것을....
도원이 몹시 의기소침 해지고 심정이 복잡해졌다. 나는 그런 그를 위로해주지 못했다. 굳은 소리만 계속 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가 겪은 심정에 왜 공감을 하지 않았을까. 어느새 구박하고 폄하하는 언행이 습이 되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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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이 나의 정체를 의심한다.
나는 명예를 회복하기위해 10년도 넘은 자료들을 뒤졌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봤다고!'
10살짜리 사람이 자기들보다 30년이나 오래 산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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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길목에 라훌라로 만난 네가

매일 웃으며 따뜻하게 나를 안아준다

뻣뻣한 의식의 손가락 맨끝까지 퍼져가는 온기가

너의 심장 속 에너지이고 생명의 근원인가 보다

나의 사랑하는 보물아,

너는 한번도 라훌라의 이름을 지니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렇게 불렀을 뿐 너는 한번도 라훌라였던 적이 없단다

계절들이 한번씩 돌고 돌아 다시 그 자리에 머문 지금

이 어미는 그것을 깨달았으니 이 봄은 찬란하디 찬란할 것이다

 

 


다연이는 장난감이 많잖아?!
엄마도 새 장난감.
허허허

빵구나겠네, 내 통장.



 

추쿠덕-

이제는 나침반의 닫혀진 덮개를 열때.
새로운 이정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도
무섭지 않아

두려움은 이제 그만.

하지만 잠시 조금만 더 기다려
나침반의 방향은 아직 멈추지 않았고
방향을 가르켜 주지 못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저 바늘이 멈출 때까지
꼭 멈출테니까

믿어
두려워말고
울지 말고
곧 곧 곧
방향을 찾을테니까


마음씨앗센터에서 진행한 마음비추기 두번째 계절-겨울피정에 다녀와...

 

익숙한 공간, 두번째로 만나는 사람들, 예측 가능한 일정.
처음이 아니라 낯설지 않다는 만남의 전제는 과도한 긴장감을 들게 하지않아다. 그래서 편한 마음으로 피정을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피정팀에서 설정한 겨울 주제는 '고독과 어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단어가 주는 무게와 우울감은 있었으나 의외로 가벼웠고 홀가분 했다. 아마도 그것은 이미 지독한 고독과 어둠을 이제 막 빠져나온 시점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초보 엄마로서, 초보 주부로서 그리고 낯설기만 한 '아내의 자리'에서 바닥을 한번 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피정에 오기 몇일 전 타로수업에 있었던 일이 하나 있다. 타로 강사인 '달리'가 현재의 내 상태와 모습을 인정하면 되지 않냐고 물어 온 적이 있었다. 그 순간 내 자존심이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말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여전히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말에 기분이 상하고 그 말을 거부하는 마음이 올라온 걸 보고 깨달았다.
'아직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나는....'

나는 몇년간 공부하고 쌓아온 어설픈 얼개들을 과대평가했었다. 더불어 나의 위상을 몹시 고귀하게 설정했었는데 결혼,임신,육아의 2년 속에서 그것이 순식간에(바로 한 큐에~) 무너지는 걸 아프게 바라봐야 했다. 결코 복구가 될 기미를 보이지 않은데다가 꼭꼭 묻어두어 소멸했다고 여긴 묵은 습관과 바람직함과는 거리가 먼 성향들이 나를 완전히 채워가기까지 했으니 내 모습은 '꼬라지'수준이 되어갔다. 그건 끔찍하고 고통을 주었다. 그걸 직면하면서도 속으로는 '아니야 아니야'를 외쳤던 2년 이었던 거다.

그런데 그 거부의 자세를 이번 겨울 피정에서 놓아버린 듯 하다.
놓는다는 것은 '인정하기'부터 해야 가능하다. 자연스럽게 내 꼬라지를 인정하였고 더욱이 '진정으로' 그리한 기분이다. 
꼬라지는 나의 어둠이었고 그 어둠을 인정하고 품으며 그것의 가치를 인정해주었다.
아이러니 하지만 인정하고 품음으로서 놓는 것이 가능해졌다고나 할까.
'으응, 이 모습도 나야.'

마음이 편하다.
겨울피정 내내 마음이 편했다.
달리로부터 들은 한마디에 내 심정이 어떻게 꿈틀거렸는가를 감지했을 때부터 겨울 피정이 시작되었고
막상 겨울피정이 되어서는 고독이 반갑고 어둠이 싫지 않았다. 그런 심정으로 '나침반'의 사진을 골랐고
그것에 단상의 글을 붙여주었다. 이미지에 싯구를 붙이는 작업은 꽤 오랫동안 해왔던 것이지만 또한 오랜만에 한 것이라 감각이 살아있을까 싶었는데 다행이 나도 만족스럽고 특히나 다른 이들이 많이 좋아해 주었다. 그 중 한 이는 선물로 받기를 원해서 흔쾌히 건내주고 돌아왔다.

돌아오니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작그마한 존재가
집 안을 온통 채우고 있었다. 마구마구 어지럽힘으로써. ^^.
그것이 너무너무 좋았다.

봄을 기다린다.
저 울트라 파워급 꼬마 요정과 봄날의 대지 위를 뛰어 다닐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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