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겨울은 어떠한가
시리게 푸르고 저미게 새하얀 세상같은가
메마른 공기와 푸석하게 부수어지는 세상같은가

나의 겨울은 몹시 황량하다
어여쁜 딸아이와 나쁜 점 없는 애아빠와
보내는 이 겨울이 진저리치게 흉물스럽다
까만 겨울 밤하늘에서 별들을 보았던 이 두 눈이
어느새 감아버린 이 겨울, 나는 살고 싶어 사는 것이 아니다

그대,
그대의 이 겨울은 어떠한가
말 없는 그대에게 묻는다
나의 그대였던 그대에게.
나의 그대가 존재했던 망각의 시간이 떠오르는 이 겨울 저녁에.


 

 

 

 

 

마당에 감나무가 없어도

감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열매가 나무의 뿌리가 아닌 가지에 열리기 때문이다.

 

가지는 경계가 없어

담을 넘고 땅을 건너온다.

 

노란 감꽃 눈물을 떨군 자리에

붉은 심장을 매달고서.

 

 

.

.

 

 

배롱나무에 열리는 꽃들도 100일 동안 핀다하여 백일홍이라 하고

1년생 화초인 이것도 100여일동안 꽃을 피운다 하여 백일홍이라 한다.

 

배롱나무는 한가지 꽃만을 피우지만

화초 백일홍은 여러가지 꽃들을 피운다.

 

가장 작은 꽃송이는 마지막이 되어서야 얼굴을 내밀었다.

자신보다 곱절배도 더 되는 다른 백일홍 꽃들이 차차 수그러질때

작고 앙증맞은 분홍 백일홍은 솜꽃마냥 탐스럽게 올망졸망 핀다.

 

꽃 한송이를 꽂을 때마다

마음 하나씩 집어 내는 아침.

 

.



쉼 없이 움직이는 일상인듯 싶어도
해가 질 무렵 잠시 처마아래 계단에 앉아있다보면
쉼 없음이 쉼임을 알게더라.

 

 

[그림: 갤럭시 노트  by 민화 憫華 ]

 

 

 

밥을 짓고 공간을 정돈하고 바느질을 하는 소일들이 기도도 되고 수행도 된다고 하였다.

아련한 이해로 듬성듬성 안다고 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가슴으로 체득하기엔 너무 설었다.

 

천을 자르는 가위질 싹뚝- 한번에,

바늘을 들어 실을 꾀는 한 동작에,

앞뒤를 맞추어 천을 대고 첫 바늘을 꼽는 순간에,

그리고 한 땀 한 땀에

기도를 한다.

 

이 물건 받을 이의 행복과 나눔을 기도하고

아집과 욕심을 빛 바래지길 서원한다.

 

뒤틀어지는 마음을 바라보고

선한 의도를 자아내며

'잘 쓰이기를, 잘 쓰이기를. 모든 이들에게 잘 쓰이기를.'

 

그렇게 스물 네개의 바느질이 다 끝나면

지난 6년간의 어리석음이 작아질까.

붙들고 있는 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을까.

 

이천십이년 팔월에는.

 

 

기도하는 마음을 지닌 다는 것은 간절함이다.

간절함으로 하루를 산다는 것은 겸허함이다.

겸허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수용의 마음을 지님이다.

수용의 마음은 가장 낮으며 가장 넓은 마음이다.

누구나 오기를 좋아하고 가는 것이 어렵지 않은

낮고 넓은 마음이다.

 

 

 

 

 

옆문을 열어 놓아 주세요.

 

 

이제는 나를 버리려 하십니다.

내가 틔운 잎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내가 드렸던 그늘이 더는 필요가 없으시나요.

 

수액을 땅끝부터 끌어 올려 잎을 피워 그늘을 만들었던

이 마음이 지극하지 아니했나요.

 

예쁘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고맙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나의 님아.

 

이제는 낡은 수레에 나를 실어 버리려 하십니다.

멀리 멀리 가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살아야지.....'

 

어찌 살것인지에 대해 길을 정했다고 했지만 많은 부분은 빈 여백이고

그나마 그려가고 있는 것도 그 모양과 색이 조금씩 바뀌니 하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불명확함.

그리고 거기서 오는 불안감.

 

란다에 오색빛 룽카를 걸어 놓고 보니

라다크에서 보았던 기도깃발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국의 바람은 기도글을 읽고 또 읽어주고 있었다.

그 시절엔 그와같이 내 가슴에도 기도깃발이 나부끼고 있었고

깃발을 움직이게 한 바람의 존재를 명명히 느끼고 있었다.

가슴 안 가득히 바람을 안고

내 느낌으로 내 길을 가는데 어려움도 주저함도 없었다.

어떤 불안감도 없었다.

 

 

기도 깃발을 오도커니 보면서

내 가슴 속엔 펄럭이지 않는 기도깃발, 룽카가 그렇게 있음을 보았다.

텅 빈 황량한 가슴.

어느새 바람이 멎었을까........

 

과거의 기억, 그리움, 혹은 후회하는 존재는 '진아'가 아닌 '가아(가짜 자아)' 이다.

 

'후회하는 건 가아에요. 진아가 아니란 거죠. 진아는 본성대로 계속 , 그대로 진행하는 거에요'

 

후회한다는 건 과거에 머물러 있고 지금 바로 현재 여기에 머물리지 않고 떠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존재는 불안, 공포, 슬픔 등 부정적인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재에 머물기.

진아로서 존재하기.

 

하고 멈추어 버린 가슴에도 다시 바람은 불 것이고 나의 기도깃발은 펄럭일것이다.

그러나 예전과는 다른 바람이고 다른 기도가 될 것이다.

지나간 것은 다시 오지 않고 항상 변하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옛 것을 그리워 하는 나를 털어버려야 한다.

 

꿈을 꾸기로 했다.

희망을 그리기로 했다.

 

"공간을 그리고 그 속에서 이러이러한 것을 하면서 살아야지. 그런것들로 그 공간에 오는 사람들이 행복해 할 수 있도록.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포근한 미소를 짓고 갈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물들일 수 있는 삶을 살아야지."

 

이 나서, 무모하다 싶어서, 삶의 터전을 바꾸는 시작은 상황에 맞춰 하자는 안일함에서

그리고 일상에 치이면서 그림 그리기를 멈추었음을 깨달았다.

희망을 키우지 않았었구나.

에너지를 소진하고만 있었구나.

 

희망 없이는, 그 에너지 없이는 결코 나의 공간과 삶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꿈을 꾼다. 희망을 그린다.

 

'방에서 인형을 만들자. 영상도 조금 만들어 보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욕심 같아서는 캘커타 코코넛처럼 헌책들이 많이 있으면 좋겠고.

 내가 생활하는 공간은 두는 것 없이 소박하지만

 사람들이 스치고 지나갈 공간엔 차와 책, 볼거리들,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면 좋겠어.'

 

 그렇게 살 수 있는 터전을 찾아보기로 하면서 움직이는 것과

 어떤 터전을 찾아볼지 결정하기를 주저하면서 움직이는 건 다르다.

 다시, 내 목소리를 따라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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