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개의 하늘
가슴에 내리는 하늘은 하나

백만개의 속삭임
기억에 새겨지는 소리는 하나

무수히 많은 인연, 무수히 많은 사람
점점이 맺히는 이는 단 하나

그 하나가 전부가 될 수 없다 할 때
내려 놓아야 하는 하늘이 울고
지워야 할 기억은 아프고
담을 수 없는 인연은 눈을 감습니다.



다 같진 않아요.

모든 나무가 하늘을 향해서 잎을 돋지 않는 것 처럼.
모든 나무의 뿌리가 땅속 아래로만 뻗지 않는 것 처럼.

항상 같은 순 없지요.

하늘만 보며 내닫던 그 마음도
지치고 쉬고 싶을 땐 땅에 기대어 봅니다.
땅속 아늑한 곳에 머물던 가슴 울림도
공기의 부딪힘이 뿌려주는 반짝임에 웃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것은 나뭇잎이고
그래도 그것은 뿌리에요.

모두 다 똑같지는 않아도
나무입니다.



 하얀 설(雪) 밭.
 점점이 한 사람이 발자욱을 새기며 나아간다.
 전 사람의 발자욱에 자신의 것을 새기며 나아간다.
 
 그렇게 다져진 눈 밭엔 사람 길이 나 있다.
 
 하얀 설(雪) 밭.
 최초의 발자욱이 마지막 발자욱과 하나 된 길 위에
 내 삶의 무게만큼 찍어 놓은 발자욱은
 나의 것이기도 하고 전 사람 것이기도 하며
 내 뒤의 사람 것이기도 하여, 모두 다 같다.

 하얀 설(雪) 밭.
 발자욱 찍을 줄 모르는 나무들은
 그걸 다 안다.
 나무들은 그걸 다 안다.  





.
특별한 시간을 저장한 기의 이야기.



많은 기억의 중첩 현상.
어떤 기억은 되뇌일 수 있고
어떤 기억은 빛바래서 혹은 다른 기억의 물들어서 되뇌일 수 없고
또 어떤 기억은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차갑지 않다.
언 땅도 내 가슴 보다 따뜻하고
연못 얼음도 내 품보다 포근하지.

뼛속 한기가 드는 건
동짓섣달이 와서도 아니고
동장군이 오셔서도 아니다.

서늘한 가슴으로 사는 나 때문이다.
얼어붙은 마음으로 사는 나 때문이다.

얼음 눈물 짓는 나 때문이다.

Lomo LC-A. Vista 100


기쁘다 할 것에
기쁩니다 하지 못하니 아프고

슬프다 할 것에
슬픕니다 하지 못하니 아프다

기쁘고 슬픈 것이 원래 하나에서 나왔는데
말 하지 못할 그 하나를 담은 내 가슴에 그 원죄(原罪)가 있다.

그러니
아파도 아프다고 할 수 없을 밖에.

                                                                      [Photo by 폰에 딸린 성능 나쁜 카메라]


그 누군가의 오전 10시에 말을 겁니다.
한 차례 아침나절 일을 했음직한 모습으로
붉은 쓰레기받이에 앉아 있는 어르신들.

"올해들어 처음으로 이놈을 의자 삼아 앉았네.
 나이 먹은 몸을 추스리는 쉼 시간이라오.
봄철이 가까와 지니
온 길거리가 휴게공간이라오.
아주 좋지요."

지나가는 행인들은 그들의 쉬는 모양에 관심이 없고
그들도 사람들이 지나가는 줄 모릅니다.
다만 거기엔 함께 늙어가는 동료와
자꾸만 따뜻해지는 서울 동네가 있을 뿐.

나도 유령처럼 그분들 곁을 스쳐지나가지만
한 생각을 그 자리에 놓아보았습니다.

'계절이 봄이어서 참 다행이야.'

비스므리한 모습으로 동네 어귀마다
휴게시간을 누리고 있을 어르신들에겐 참 좋겠습니다.
봄꽃 마냥 좋군요.
아주 좋지요.



봄이다
칼바람을 안고 있는 계절
칼의 품에서 꽃이 핀다.
그리하여 그 칼을 맞고서 나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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