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햇살이 따듯한 오늘이다.

친정집 베란다에 햇살이 가득인 가운데 누군가 거실창문을 열어 놓았다.

다연이를 안은 채 베란다로 나섰다. 햇살 닿는 피부가 따뜻하다.

그 햇살이 다연이의 긴 머리카락과 부드러운 피부에 내려앉는다.

잠든 다연아, 이것이 햇살이란다.

로즈허브 잎 하나를 따서 비벼본다. 화-한 내음이 피어 오르는 것을 다연이 코 밑에 대어 보았다.

이 냄새는 어떠니, 다연아.

잠들어 있는 아가는 잠시 킁킁 거리다가 잠잠해 진다.

 

아가를 안고

베란다의 짧은 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념에 잠긴다.

지난 25일 동안 다연이를 출산하고 난 직후 내 상황과 마음상태를 반추해 본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까지 육아의 이상적 모습에 매달려 있었음을 하나씩 하나씩 들춰내었다.

 

나는 내가 무척 잘해 나갈 줄 알았던 거다.

자연출산을 했으니 모유수유를 완벽하게 한다면 정말 완벽할 거라고 여겼던 거다.

나는 엄마가 되었으니 아기를 잘 보살피고 울리지 않고

아기의 사인을 즉각 알아 먹는 총명하고 영리한 엄마가 되리라, 그렇게 그림을 그렸던 거다.

그러나 지난 25일 동안 그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 나의 현실이다.

 

모유수유를 하는 것부터 전혀 쉽지 않다.

처음에는 모유양이 부족했었고 잘 나오지를 않았다.

나의 젖꼭지는 아가가 잘 물 수 없는 구조여서 보조기구 도움 없이는 젖을 물릴 수 없는 형국이었다.

게다가 보조기구를 착용함에도 아가가 젖을 물면 물수록 통증이 가중되고 급기야 밤중에는 도저히

아기에게 젖을 물릴 수가 없었다. 밤에라도 덜 물려야 다음날 아가에게 수유를 할 수 있었다.

하루 24시간 내내 가슴 통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니 아기에게 젖을 물리기가 겁이 났다.

 

친정으로 오고나니

아기는 밤잠 투정이 심해졌다.

새벽 2시 전후로 자지 않고 우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친정엄마가 그 시간에 다연이를 어르고 달랬고 나는 기진맥진하여 잠을 자곤 했다.

한마디로 밤중수유를 하기에도 체력은 미달이었다.

엄마가 되어서는 아기가 우는대도 망연자실 할 때도 있었다.

우는 아가를 안으면 더 울기 십상이었고 친정엄마가 안으면 그 울음을 멈추는 우리딸.

그런 새벽이 반복되니 자신감이 고갈되어 갔고 새벽울음이 두려워졌다.

아가가 편할 수 없는 엄마의 품을 지닌 사람이 되어버렸다.

 

수유도

체력도

보살피는 손길도

아이를 달래는 법도

 

정말 안되는 것이 많은 비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이

나였던 것이다.

그런대도 여전히 나는,

"완벽한 수유를 해야해.

밤중에 아이도 거뜬히 보살필 초롱초롱한 정신력을 지녀야 해.

아이의 사인을 즉각 알아 차리는 똑똑한 엄마야 해.

내가 안으면 살포시 잠드는 품을 지녀야 해.

등등등" 의 모습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오후의 베란다를 걸으며 그점들을 곱씹었다.

인정할 것을 인정해야겠다.

나는 그렇게 이상적인 엄마의 소양을 지니지 못했을 지도 몰라.

기술도 부족하고 아는것도 없고 서툴기 그지 없는 초보 엄마야.

어쩌면 아이가 커 가는 내내 시행착오만을 할지도 몰라.

아이를 보살피는 영역에서 나는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야.

그걸 인정할 줄 알아야 해.

헛똑똑이고 어수룩하고 실수투성이일 것을 예상해야 해.

많은 부분에서 완벽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많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해.

지금 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

나는 모르는 것, 못하는 것이 많은 엄마이고

다연이도 모르는 것, 못하는 것이 많은 아이야.

그러니 우리가 완벽한 모녀가 될 수 없어.

그것이 자연스러운 거야.

지금 이 모습이 가장 자연스러운 모녀인 거야.

 

그러니,

조바심을 낼 것도

고쳐야 한다고 아둥바둥 할 것도 없어.

계속 허둥될 것이고 실수 할 것이고 안되는 것이 더 많을 거야.

그게 자연스러운 거야.

자연스러운 거.

 

기다리고

내려놓자.

 

베란다에서 나오고

다연이를 뉘이고

이렇게 각인하듯

적어 내려가며

기억에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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