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날 두날 세날 동안 내린 소복한 세상.

너의 하이얀 자태가 그처럼 고와.

 

가을 적에

밤 주우러 가는 산 중턱,

구절초 동자들이

똥알똥알 나를 쳐다보며

자기네 이야기를 늘어 놓았었지.

 

한참 눈 맞추고 놀았었네.

 

흰 눈이 벌써 두번쨰야.

보따리를 단단히 꾸린

가을을 보내주어야겠다.

너희도 다시 보겠지.

어느 가을 깊은 날에는.

 

.

 

 

 

2013년 가을이 오는 길에

태어나고 자랐던 서울을 떠나

경남 함양으로 옮겨 오는 준비를 위해

너른 운동장이 있는 학교 기숙사로 거처를 잠시 했다.

 

기분 좋은 방안에서

무슨 꽃을 놓아 볼까 하다가

청초한 변산바람꽃이 꼭 한번 해 보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 바늘을 집었다.

 

부드럽고 여린 느낌을 살리지 못하였던

변산 바람꽃.

 

겨울 기운이 짙은

겨울과 봄의 경계에 있어야 할 아이가

가을에 세상에 나와 당황하였나 보다.

 

.

 

 

 

수수꽃다리야

 

내 허리춤에서 같이 노니자꾸나.

 

이 좋지 않더냐

 

.

 

 

 

 

패랭이 꽃을 가슴에 묻은 이에게

 

.

 

 

 

 

 

붉은 공단이었다.

너무나도 예민한 원단이라서

당황해하면서 간단한 연꽃을 해 보았다.

마지막까지도 길들어지지 않았던 기억이다.

 

.

 

 

 

 

바지단이 낡은 바지가 있길래

끝을 자르고 모양을 내어 수선을 하면서

한쪽씩 꽃을 심었다.

 

 

 

 

 

 

봄 날 천상세계로 가야했던 꽃님네들

그 자주빛 옷자락 끝을 슬그머니 당겨

조금만 더 놀아달라 하였소.

 

성 낼까봐 오래는 못 잡은 나의 작은 가슴살이.

잠시만이라 약조를 해 놓고

눈 맞추고

손 맞추고

숨 맞추고

그리 놀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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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에겐 큰 작품이었다.

실의 색상만 해도 수십개가 들어갔을 것이다.

잡념이 적었던 것 같다.

이 수를 놓을 땐 행복도 고요히 흘러오고 흘러갔다.

 

광주 창평으로 보내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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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랑화(女郞花)라.

 

어찌 그런 이름을 만났을까.

 

누구네 사연이였기에.

너와 나의 이야기였나.

그와 그 님의 이야기 였을까.

 

어제 오늘 내일

바람같은 여랑의 마음들아.

아프다 마라, 아프지 마라.

꽃 떨어지는 소리도 크고 무겁다.

 

낙화의 시절,

안타깝지 않을 꽃잎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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