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면서 하늘과 대화를 나누며
어린이의 세계로 귀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날더라 마지막 소원을 말하라면
"도인이 되어 선(禪)의 삼매경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
입니다.

- 화백 古 운보 김기창의 어록중에서 -

[행복]
태어나 행복했던 일은
어느 날 당신 만나
당신의 이름을 남몰래 부르는 일이었습니다.
늘 어둡던 내 마음의 산과 강이
빛으로 밝아지는 걸 바라보는 일이었스빈다.
오월의 운문사 주변 감나무 잎사귀들처럼
내 마음의 근심들이 기쁨으로 바뀌어
당신을 향해 반짝이는 걸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태어나 가장 행복했던 일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행복해 하는 나를
눈물로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연가戀歌]
1
그대와 내가 마주보고
그대가 나의 누구인가를 묻고 있을 때
그대는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네.
겨울의 눈 엎인 들에 서건
별이 숨은 어두운 강에 서건
스스로 가득하며 따뜻했던 우리
우리가 거주할 정원의 나무
목련과 라일락 곁에서
정오가 던지는 은빛 그물 안에서
서로의 모습을 정립하려 했을 때
우리는 흔들리기 시작했네.
빛과 모습 시간을 뛰어넘는
사랑을,
장식하며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입맞춤 속에 녹아 있는 모든 것은 무너지고 있었네.

2
잠길에도
잠의 끝에 이르기 전에
우리가 걷는 길은 끊어져 있었어.
바람이 뜨락을 채우는 자정
뜨락을 지키는 소롯한 나무
혼자서 키가 크는 나무 위에
그대가 기르는 새는
날아오지 않았어.
잠길에도
그대 사는 숲의 하늘을 알 길 없고
그림자만 긴 나무
낮과 밤이 엇바뀌는 끄트머리쯤
외가닥 바람으로 떠돌아도
그리움의 아슬한 끝은
잡히지 않았어.
풀잎에 맺히는 한 방울 이슬
이슬에 비치는
그대 사는 숲의 쟁쟁한 새소리
다가서면, 무수한 빛의 입자로
허공으로 허공으로 날아올랐어.
바람이 홀로 깨어 있는 뜨락
어둠에 싸여
나무는 그림자가 길었어.

3
그대와 나의 가슴을 뚫고
어둠의 알맹이가 종처럼 울린다.
바람이 흐르며 쌓이는 곳곳에
그대의 목소리가 흩어지고
앞뒤에서 문이 닫힌다.
그대가 밟고 간
어두운 들의 한쪽 끝
광주리의 햇살을 내려놓으며
건네주던 환한 아침을
가슴에 품어온 거울에 금이 간다.
그대의 얼굴이 흩어져 날고
내가 밟는 어둠
무겁고 예리한 어둠이 살을 부신다.
그대와 나의 분별의 창에 피는
살의 파편
저울눈 위, 누금을 부수는 그대
야윈 눈빛을 남겨놓고
자신의 모습을 하나 하나 무너뜨린다.
어둠 속에 그대의 모습이 홀로 남아
어둠을 이고 일어나고 있다.




[외로움]
산의 능선과 능선 사이
구름으로 채워진 그곳
나를 두고 떠난 이름들이
내가 두고 떠난 이름들이
끝없이 흘러갑니다.
저승에도 달이 뜰까요.
꽃송이 송이 향기를 맡으며
걸어갑니다.
그림자 하나 나를 따라
아득히 걸어갑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어느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그들은 왕에게 반지 하나를 바쳤다.
반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지나 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랜터 윌슨 스미스>


  한동안 마음에서 떠나있었던 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기쁘고 좋을 땐 이 말이 멀리있으면 안되는데 꼭 그렇게 되곤 한다.
 내 삶의 귀중한 귀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본 시는 중간에 약간의 내용이 더 있고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게 가슴에 담은 내용으로 문장을 고쳐써 본 것이다.

무엇을 하느냐가 아닌, 무엇이 되느냐

무슨 일을 하는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통해서든,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든
자신이 무엇이 되어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세계 평화 운동을 하면서 독선적이고 옹졸해지면
그 사람은 독선적이고 옹졸한 사람이 되는 거다.
예술 활동을 하면서 외롭게 우울해지면
그 사람은 외롭고 우울한 사람이 되는 거다.

딱히 일이라 말할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자유롭고 행복해지면 그 사람은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거다.
그냥, 그런 거다.

                                    <먼지의 여행> 중에서


언제적에 읽었던 문구였을까,
묵혀두었던 파일책을 꺼내보니 이런 메모가 끼어 있었다.
탄자니아에서 읽은 책인 듯 싶은데 기억에 없다.
그 옛날, 어떤 느낌과 울림으로 이 문구를 이렇게 새기어 남기었던 것일까.

근육통이 따라오는 몸살감기는 세포 하나하나를 괴롭힌다. 그래서 아픔이 크다.
그런데 마음도 아픈 것 같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는 사막유목민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하나 있습니다.
유목민의 아이가 청년이 되어 세운 그 학교에는 학교찬가가 있습니다.
학교교가와 같은 것이지요.

노래의 가사들이 아름답습니다.
학교와 투아레그족, 자신들의 종족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이처럼 가슴 시릴 수 있겠지요.
가슴 울리는 노래를 부를 만큼 살아있는 학교일테지요.
찬가의 음율까지 들어본다면 사막위 하늘 속에 총총히 박힌
별들의 그것처럼  예쁘겠지요.



[생텍쥐페리 사막학교 찬가]
    - 이브라힘 교장과 사막학교 아이들 지음 -

사랑하는 가족, 가축들, 사랑하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서
우리는 지식을 찾아 나셨죠. 우리는 지식을 얻어서
우리의 땅, 넓디넓은 그곳으로 돌아갈 거예요.
이제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우리의 땅에 남을 수도 있어요.
우리는 교육을 받게 될 테니까요.
우리는 공동체, 여러 나라들 틈에서도
분열되지 않고 하나로 뭉치죠.
그 무엇도 더 이상 우리를 유린할 수 없고,
우리에게 굴욕을 안길 수 없어요.
사랑의 편지들이 쓰일 테니까요.
시들이 춤출 테니까요.
길들이 뻗어 나갈 테니까요.
그리고 묻혀 있던 우리의 역사가 떠오를 테니까요.


              - 사막학교 아이들(무사 앗사리드,이브라힘 앗사리드 지음. 고즈윈출판사 2010)에서 발췌-

 도종환씨를 시인으로서  좋아한다.
 그의 언어와 그 언어까지 다다르는 그의 의식흐름을
 읆조릴 때면 가슴이 소리를 내니까.
 띠엄띠엄 읽어 내려갔던 시들을
정리해서 총.체.적.으로 읽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문득 해 본다.

 1954년 충북에서 태어나셨다. 국어교육을 공부했고.

 시집- 고두미마을에서, 접시꽃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지금 비록 너의 곁을 떠나지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부드러운 직선.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그대 가슴에는 나뭇잎배,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모과,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동화- 바다유리


 등등.

 인디고 서원의 흔적은 참으로 강하다.

  주제와 변주1,2 는 시선을 하늘에 두고 있는 청년들에게도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기성세대들에게도 읽으시라 해도 좋은 책.

  그 안에는 음악이 있다.
  다음은 그 음율의 흔적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어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않아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 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우화의 강1. 마종기]

 

             

 

 

[사랑노래 넷]

오늘 나는 스스로도 주체 못하는 내 불안한 삶에

나름대로 불안한 그대의 존재를 삽입시키려고 하나

삽입시키기 훨씬 이전 그대는 좀더 큰 사랑으로

내 여린 품속을 파고들어와, 헤비집고 들어선다

드릴 것은 온갖 하찮은 눈물덩어리 그 위에

피묻은 노동 한 점뿐

그러나 그대는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괜찮다 하고

다만 그대가 돌아간 어두운 정거장 내가 홀로 서서

홀로인 것과 설움과 그대가 휩싸여 사라진 어둠 그리고

그대의 몸조심에 대한 나의 터무니 없는 불행을 못 참고

서있는 나에게 그대는 왜 나의 그 좁디좁은 불안의 근성

그 구석자리나마 그대가 들어설 자리를 마련해 놓지 않으셨냐고 한다

겉으론 나 하나의 사랑만 갈구한 듯 보이는 그대의 소극적인 소망이

왜 모두에의 사랑을 추구한다는 나의 싸움의 개념보다

더 처절해 보이는가?

더 커 보이는가?

그대가 돌아간 밤은 여전히 더 커 보이고 더 오래돼 보이고

나도 자부할 것은 기실 그대를 열심히 사랑했었다는 것

나는 기실 아무것도 믿음도 의심도 완성시키지는 못했나보다

아니면 그대는 단지 내 여린 품 속의 어떤 자리의

아주 사소한 소유권만을 주장할 뿐인데

왜 나는 사랑이란 말조차 입에 담지 못하고

다만 그대의 위대하고 낯선 크기에 놀라

사랑을 사랑의 자식으로 삼지 못하고 있는가?

만남이여 또 다른 삶에의 놀람이여 놀람의 행복이여.

 

 

 

 

 

 

[물이 되는 꿈]

               -  루시드 폴의 오 사랑앨범 수혹 곡

 

, 물이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 꽃이 되는 꿈, 씨가 되는 꿈, 풀이 되는 꿈

, 강이 되는 꿈, 빛이 되는 꿈, 소금이 되는 꿈

바다, 바다가 되는 꿈, 파도가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 별이 되는 꿈, 달이 되는 꿈, 새가 되는 꿈

, 비가 되는 꿈, 돌이 되는 꿈, 흙이 되는 꿈

, 산이 되는 꿈, 내가 되는 꿈, 바람이 되는 꿈

다시, 바다 바다가 되는 꿈, 모래가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 비가 되는 꿈, 내가 되는 꿈, 강이 되는 꿈

다시, 바다 바다가 되는 꿈, 하늘이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저물녘 천천히 어둠이 내리는 방안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을 나는 좋아합니다. 음악도 꺼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가만히 누워 이 별이 하루분의 여행을 마쳐가는 것을 가만 바라봅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여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불을 켜서는 안 됩니다. 밤의 어둠을 대낮처럼 밝히는 일은 어둠에 대한 모독일 것입니다. 밝은 날 활기 있게 일하고 놀며 어두워지면 그 어둠을 영접하여 몽상과 휴식의 시간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간의 율동이니. 밝음이 사라지고 서서히 어두워져 완전한 어둠에 들기까지, 혹은 완전한 어둠으로부터 서서히 희부윰해지며 밝음에 드는 경계의 시간을 나는 사랑합니다. 경계를 지나며 숨을 고르기 시작하는 어둠속에 가만히 누워 있을 때 충만해지는 존재감. 나는 속삭이게 됩니다. 나는 이 별의 사람이구나. 낮고 작은 이별에서 들숨과 날숨을 빌린 사람이구나.”

 

<김선의의 달의 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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