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경(山徑)

산을 오르다가 만나는 파란 풀밭에서 속삭이는 소리 따라가니
풀뿌리 적시며 하늘을 안고 박혀 있는 샘물을 만났네.
햇살을 안고 반짝이는 샘물에 어리는 내 얼굴 비로소 바로 보이고,
나무들도 와서 저마다 굵기로 뿌리를 내려 물을 마시며,
푸른 피로 힘차게 일어서서 하늘로 가지를 뻗고,
검푸른 잎으로 햇살과 바람이 함께 엮는 하늘 글자를 속삭이듯 읽고 있어,
소리를 따라 계속 오르다 보니.
비탈길에 바위들이 저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무릎 아래 풀잎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소나무 스치는 바람 소리를 아래로 전해 주고,
오리나무 붉은 속잎 돋는 소리 알려주고,
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푸른피가 통하는 길을 열어 주기에,
바위타고 나무 잡고 허위허위 숨 가쁘게 오르다 보니,
수억, 수만, 수천 세월 살아온 생애를 구름처럼, 안개처름, 이슬처럼 거느리고.
우람하게 앉아서 햇살 받아 안고, 파란 하늘 이고, 머리에 투구처럼 소나무 꽂고,
영원을 사는 법을, 바람으로 설법設法하다가, 구름으로 기도祺禱하고 있네.




등산기登山記

날 부르는 소리 들려서 산을 오르다 보니, 등에 땀이 솟을 때쯤 내 손잡아 주는 부드러운 손길,
오리나무 연하고 붉은 가지 흔들며 손짓하는, 여기는 하얀 바위 얼굴이 싱긋이 웃는 애기봉,
엎드린 능선을 타고 아침 안개 걷히고 하얀 바위들 생글생글 웃고 있어 잠시 땀을 식히고,
부르는 소리따라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흰구름 몇 무더기 떠오르는 파란 하늘에서 햇살 내려와
초록빛 눈웃음 치며, 소나무 아랫도리를 감싸면서, 힘차게 뿌리는 내리는, 여기는 바위들이
스크럼을 짜고 뛰노는 형제봉, 가쁜 숨결 몰아쉬며 잠시 땀을 닦고 앉으니, 바위 사이로 굵은
소나무 뿌리가 삶의 무게로 깊숙이 뻗어, 서로 사랑하는 법을 보여 주고 있어, 우리도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힘을 합쳐 능선을 타고 오르니, 참나무가 굵은 껍질을 덮고, 가는 길을 손짓해
주고 있어, 햇살 받아 검은 이끼 벗고 하얗게 웃는 바위들따라 오르다 보니, 하늘을 우러러
솟대바위를 창처럼 거느리고, 삶이란 스스로 하늘을 여는 것이라고, 모자 위에서 깃털처럼
소나무를 키우며, 독경처럼 바람 소리 거느리고, 가파르게 오르는 길, 소나무 손잡고
참나무에 의지하여 힘겹게 오르다 보니, 흰 바위가 양쪽 날개를 달고 하늘을 향한 여기가
비봉飛峰이라네, 바라보니 계곡마다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나무사이 풀들이 짙푸르게
우거진 저 건너, 저 높은 산봉우리는 상제봉上帝峰이고, 그 뒤로 검푸른 몸체를 우람하게 드러내고,
인자하게 앉은 태모봉胎母峰도 보이네.
 
[테마시집] 

당신이 그리운 건 내게서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정하 외 지음, 책만드는집



완행열차
        허영자

급행열차를 놏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1        용혜원

그대를 만나던 날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착한 눈빛, 해맑은 웃음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에도
따뜻한 배려가 있어
잠시 동안 함께 있었는데
오래 사귄 친구처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내가 하는 말들을
웃는 얼굴로 잘 들어주고
어떤 격식이나 체면 차림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솔직하고 담백함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대가 내 마음을 읽어주는 것만 같아
둥지를 잃은 새가
새 둥지를 찾은 것만 같았습니다
짧은 만남이지만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오랜만에 마음을 함께
맞추고 시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꽃 한 다발을 받은 것보다
더 행복했습니다

그대는 함꼐 있으면 있을수록
더 좋은 사람입니다.





사랑            김용택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 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속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 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보면
당신도 이 세상 하고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컸으나
참된 아픔으로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다 보이고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다 이뻐 보이고
소중하게 다가오며
내가 많이도
세상을 살아낸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과 만남으로 하여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배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당신의 어깨에
내 머리를 얹은 어느 날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우리 둘인 참 좋았습니다.
이 뽐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 조극 산천의 아픈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안녕.




그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이정하

그대 굳이 아는 척하지 않아도 좋다.
찬비에 젖어도 새잎은 돋고
구름에 가려도 별은 뜨나니
그대 굳이 손 내밀지 않아도 좋다.
말 한 번 건네지도 못하면서
마른 낙엽처럼 잘도 타오른 나는
혼자 뜨겁게 사랑하다
나 스스로 사랑이 되면 그뿐
그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폐사지에서의 발견 여래를 품다 |글:김윤희, 그림:배종훈 | 맑은소리 맑은나라 출판사


수희공덕

불법의 정상적인 길이란
바르게 듣고 행하며
그 이치를 참되게
설명하는데
더 큰 복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내가 아는 것을 바르게 전달할 줄 알아야
바른 불자의 길을 걷는 것이라 했습니다.
즉, 위인해설이 되어야 비로소 공덕을 회향한다 하겠습니다.   (p19)



큰마음

오직 한 곳으로 향하는 간절함,
혼탁함이 걸러진 정갈함,
자신을 낮추는 겸허함,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자비로움이
기도 속에 녹아있습니다.

정성을 들이고 공을 들이는 일,
그것은 기도하는 마음과
같은 마음입니다          (p101)
결제
숲을 지키는 나무들 1

예부터
많은 중이 모여 산다고 총림.

일주문까지 비질된
하안거 결젯날
도량 가득
장삼 가사를 두른 납자들.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더 짙어질 푸르름만을 남긴 채
숲들은 차라리 적요.

모여산다는 것
그 무엇에 대한 결의일까
봇둑에 가득 넘실대는 물빛.

잡목들로 이룩된
오월의 산
튼실한 뻐국새 소리
뱀과 용이 섞여
총림을 이루며
산은 더욱 큰 그늘로 오고.

모든 잡소리 치우는
힘찬 죽비소리 하나로
툇돌 흰 고무신들 가즈런하다.
산꽃2

그대 속삭임과
나의 기다림은
웅자한 산의 웅얼거림으로 되니어지고
그대 아득한 사랑
절벽에 핀 꽃의 날리는 한숨이네
그대 거처에는 오늘도
나의 서성거리는 발길처럼
새가 지나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물소리도 기웃거리듯 지나가고
그 모두의 그림자만 그림자만 지나가는
무망한 나날들
함뼘 기웃한 햇빛
그대 모습처럼
꽃잎 두어 낱 어깨 맞춰 지나가고 있어라





연꽃3

간 밤에는 너무 취했나 보다
비바람 속을 달려온
천둥의 뜨거운 손길은
붉은 연꽃 두어번 번쩍 어루다가는
연꽃이듯 충혈된 눈빛
천리밖 눈물은
왜 이다지 생각보다 빠르게
속절없이 흐르는지
썩고 악취가 나는 진흙탕에
그대를 묻고 돌아오는
해거름답 오월 숲으로 우네
아아 너나 없이
우루루 시궁창으로 몰려가
무리로 그대를 안고 이뤄 필 날은
절 질펀한 진흙창을 보듬고
향그러운 가슴으로 흩날리는 날은


왠지 두견새
                                       현담(스님)

봄 산천의 진달래 다 꺾어먹고 붉은 철쭉도 남김없이 꺾어먹고
상처투성이 맨몸으로 오시어 밤이면 뒷산 어둠 속에서 마냥 나를 부르시니
어디

              살아서 사랑하여야 합니다
              진정 살아서 단 한 번의 후회없는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합니다


달빛 넘쳐나는 해금을 들려드릴까요 아니면 찬만사 은빛 그물을 드리워
봄밤의 하염없는 뱃노래를 들려드릴까요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1,2>  민음사


1권에서 다수의 시를 발췌하여 포스팅을 하였는데
왠지 작가분들한테 미안하여 오픈은 못하고 나만 살짝살짝 본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2권의 50개의 시는 1권의 그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몇개의 시는 따로 뽑아본다. 더불어 1권에 있는 시 하나를 덧붙인다.
1권의 시 하나, 2권의 시 하나를 공개글로 하고 나머지는 역시나 비공개~.
시가 쑥쑥 자라는 시기이다.



1권에서...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른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2권에서....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제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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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렇지는 않을거다.
깨진 것이 칼만 된다면
세상은 너무 아플것이다
그런 세상에 산다는 건
매일 베이며 산다는 것일거다.

때론, 아니 어떤 깨짐이더라도
부서지고 또 부서진다면
고운 가루되어 바람에 실려 가고
강물에 띄워가고
짐승의 숨결에 들고나며
그 누구도 아파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리 살고싶다.
그리 살아야한다.

깨지더라도
모서리 하나 짓지 않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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