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글스 2017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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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다른 집 아이를 안아보게 된 일이 두 번 있었다.
4개월 된 해솔(지훈,주희네 아들)이를 우리집에서 잠깐 안았고,
도천에 사는 지우네에 놀러가서 지우를 한참 안았다.
그 두번 모두 다연이가 곁에 있었고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아기를 안을때에 비해 제 또래인 지우를 안았을때 다연이는 무심한듯 보였다. 속으로 의외라고 여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착 직후 방과후 수업이 있어 나가려고 하니 갑자기 다연이가 매달리며 많이 울었다. 이런적이 거의 없어서 우리 부부가 놀랬다. 간신히 아빠에게 맡기고 나올수 있었다.
그런데 다연이가 낮잠을 길게 못자고 깨어서는 엄마엄마를 부르며 무척 심각하게 울었더랜다. 아빠가 어서 와달라는 의미로 카톡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수업을 마친 후의 볼일을 미루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딸아이를 꼬옥 껴안아 주었다.

아마도
엄마 품에 다른 아이가 안겨있는 상황을
겪었기때문이라 추측해본다.
다연이에게는 그것이 무척 생경하고 충격적이고 불안한 경험이었으리라 여겨진다.
바로 그 당시에 다연이의 차분한 태도, 무심해보였던 표정과 행동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나 속마음이 복잡했을까. 혼돈스러웠을까. 어찌할바를 몰랐을테지. 그리 생각하니 짠해진다.

미안하다, 다연아.
엄마 품은 오직 너의 것이란다.
네가 1순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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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의 다연이는 하나씩 말을 알아듣는다. 이미 상당한 종류의 말을 이해하는 듯 하다.

~을 가져와라. 쓰레기통에 넣자. 우리 갈까?, 씽크대에 넣어요.

이리와~(이 말을 하면 멀리 도망간다),  ~을 해봐. 등등

 

매일 밤잠을 재울때 두런두런 얘기해곤 한다. 엄마 말을 알아듣지 못할 거 같은 아기때부터 해오던 습관이다.

몇몇 단어를 기억하는 지금의 딸아이에게 깜깜한 방에 함께 누워서 오늘은 이랬지, 저랬지 하며 얘기할때

예전과 다소 다른 느낌이 든다.  사뭇 엄마의 말을 다연이가 왠지 알아들을 것 같은 기분이.

엄마의 소근거림이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오늘 우리 다연이 뭐 했지? 토끼 봤지. 깡총깡총 토끼. 토끼도 보고 노래도 들었지. 판소리라는 거야."

 

어쩔땐 계속 뒤척이기만 할뿐 잠을 쉽게 못드는 다연이를 보면 잠들기를 기다리는 엄마 입장에서는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졸리면 자면 되지'가 안되는 딸아이가 안쓰러울때가 더 많다.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건,  진.정.성.을 듬뿍 담아 말을 건내는 것.

"다연아, 이제 코~ 자자. 코 자고 내일 보자. 내일은 (진짜) 즐거운 날이 될거야."

라고 종종 말해주는 것.  

 

'즐거운 날'

이 단어를 말할때 왠지 가슴이 뜨끈해진다.

아마도 진심으로 아이에게 즐거운 내일을 약속해주고 싶은 심정으로 해주는 말이기 때문일 거다.

"다연아, 엄마가 내일 또 즐겁게 해줄께. 화창한 하늘이 있고 시원한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서 가자.

그러면 너는 새로운 것들을 보고 신기해 하며 기뻐할 거 같아.

네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

그러면 너는 많이 웃을 것이고 무척 뛰어다닐 것이고 많은 것을 느끼며 행복해 할 테지.

엄마는 네가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거든.

내일 꼭 그렇게 해주고 싶어."

라고 할 수 있는 길고 긴 엄마의 심정을 고농도로 압축하여 짜낸 진국의 말이

"내일은(혹은 내일도) 즐거운 날이 될거야"

이다.

 

이 말에 폼한된 의미를 나열해 보자면,

1. 엄마는 네가 내일 즐겁고 행복하길 바래.

2. 엄마가 즐거운 경험들을 만나게 해줄께.

3. 그리고 즐거워 하는 너와 함께하는 것이 엄마는 즐겁고 행복해.

4. 너의 행복한 하루는 엄마의 행복한 하루야.

5. 엄마의 내일도 즐거울 거야.

이 정도가 아닐까.

 

잠들어 가는 아이에게 즐거울 수 있는 내일을 약속해 주는

엄마의 마음은 참 묘하다.

한 존재가 온전히 즐겁고 행복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그 마음 중에 변색되지 않을 최고의 마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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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정비 비용을 지불하고 나니
생활비 통장에 잔고가 1백만원.
이건이 우리의 마지막 안전선이라 여기고
화이팅을 외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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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가 물건들을 가르키며 달라고 하는데 도통 어떤 물건인지를 모르겠다.
"이거? 이거? 그럼 이거?
다연아, 모르겠잖니. 말을 해야 알지."

혹은 큰방으로 건너오지 못하도록 안전문을 걸어놓으면 열어달라는 시늉을 한다.
"다연아, 열어 주세요~ 라고 말을 해"

이런 상황들에서 다연이는 이렇게 외친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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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엄마는 웃음을 못 감추며
물건을 집어주거나 안전문을 열어준다.
'말'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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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단순하게 살아갈 준비를 해보자
(미니멀 라이프에 근접하기)


시간이 흐를수록 집안에 물건이 많아지고있다. 자연적으로 수납도구가 빈공간에 자꾸 놓아지게 된다.
한차례 물건을 정리하겠다고 나서도 크게 줄어드는 것 같아보이지도 않는다. 마음만 앞서는 것일까, 이상일뿐인가.

긴호흡으로 접근을 해야겠다고 여긴다.
물건을 늘이는동안 들였던 시간과 고민을 하찮게 여기면 안될거 같다. 그건 그거대로 존중하되 내 삶도 존중해가며 물건을 천천히 빼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삶을 느리게 사유하면서.

미니멀 라이프와 관련된 서적을 읽으면서 마음자세를 그려보고있는 중이다. 다연이의 2돌때쯤에는 단순하면서 넉넉한 그런 공간에서 여유로운 마음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을 머리에 그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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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리집에 '말(언어) 비상사태'가 시작되었다. 
 
어제 16개월을 코앞에 둔 딸아이가
집안 물건을 다루다 잘 안되거나 엄마 아빠가 자기를 가로 막으면
"아-시!"
라고 자주 그러는 것이다. 
 
뭐?! 뭐라고? 
아-씨! 라고? 
 
분명 딸내미는 자기 의지와 부딪히는 상황에
'에이-씨'의 준말인 '아-씨!'를 사용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능숙하게. 
 
내가 그 말을 썼나?
남편이 그 말을 자주 했나? 
 
둘 다 자주 하더라.....-.-..
인식하지 못했는데 우리 부부는 종종 작은 중얼거림으로
'아 c'를 사용하고 있었다. 
 
다연이가 그 말을 뱉어 낼때마다
허리굽혀 '미안합니다'라고 해준다.
진짜 미안해서!
아 c, 고쳐야지!

 

 봄이 오면서 마당의 풍경색은 

 수선화로 시작한다.

 그러다 작은 들풀들이 눈에 보일듯 말듯 피어나고

 민들레가 대장이 되어버린다.

 그럴때 몇가지 꽃나무가 꽃을 틔우는데 공교롭게도 나는 그 이름을 모른다.

 여기까지가 봄꽃 향연 1탄이다.

 

1탄의 향연이 사그라들려고 할때

2탄의 서막이 시작된다.

작약, 붓꽃, 장미 등의 꽃봉우리들이 여물어갈 때 

꽃잔디와 같은 앙증맞은 꽃들이 그들을 마중한다.

오늘보니 우리집 작은 마당은 봄꽃 향연 2탄의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인다.

이 향연을 가족들과 만끽하는 5월이 되기를!

아이의 종합감기로 움츠려들었던 가슴이 활짝 펴지기를!

소진된 내 에너지가 꽉 채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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