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경주 황성동 상가건축을 맡아서 지었는데, 오랜만에 가서 보니 1,2,3층 모두 입주가 완료되었다.
건물에 사람들 소리가 북적이니 왠지 기분이 좋다.
하자 몇군데 보수하고, 막창집 현관 앞에 데크하나놓고, 작은 경계담장 하나 만들어주고 돌아왔다.
내가 모든걸 맡아서 해보는건 처음이라 공부가 많이 되었던 현장. 지나가보니 참 아쉬운 것들이 많다. 과제로 삼아 가자.
이제 건축(시공)의 길로 집중을 해야할 시간인거 같다. ​

아빠는 불안하다
우리 셋 도원&민화&우주 | 2016.06.08 | 일상 이야기 | 공개
경주에 하자보수작업하러 와 있다. 함양집을 나서기 전, 이미 마음은 무겁다.
아내는 지쳐있고, 다연이는 엄마아빠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갓난쟁이.

집에 있으면 가사일이나 육아를 도울수 있어서 마음이 편하고 물론 몸도 편하다. 아내가 에너지를 회복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지않을까싶고.

사회가 돌아가는 소식을 짬짬히 살펴본다. 뭔가 심각한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음을 직감한다. 허물어져내린다고 할까.

다연이가 살아갈 사회에 어둠이 짙게 내려앉고 있다. 정치 경제 관료 교육 문화 치안 노조 등등등 총체적으로 막혀있다. 가진사람들, 배운사람들, 똑똑한 사람들, 권력있는 사람들, 뭐라도 있는 사람들이 각 분야의 절정에 똬리를 틀고 먹고 해먹고 또 해먹고.

북한에는 1명에 의해 세습되지만 남한에서는 100명정도에 의해 세습되는 사회라는 말에 공감한다.

구의역에서 한 아이가 죽어갔다. 눈물이 난다. 왠지 모르겠다. 아마, 이 아이의 죽음이 끝이 아닐거라는 직감과 헤어날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운명애때문일까.

내 생애 두번째로 먹고사는 일에 대해 불안해하고 갑갑해한다. 사실, 첫번째라고해도 맞을게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변하게 했나.

깊이깊이, 첫마음을 돌아본다. 천천히천천히 가는길을 살펴본다.

나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죽어있고싶지 않다. 다만, 자유롭고자 또 해보고 또 해보고 안되면 또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또 해보는 마음으로 그래 그만하면 애썼다 그만 편히 가시게. 그렇게 스스로 다독여주면서 멀리 영원을 향해 떠날게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다연이가 생겼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새 생명을 얻었는데 왜 나는 더 충만되고, 더 평화롭고 더 자유로움을 향해 나가지 못하고 이렇게 주춤하고 있을까.

어쩌면 무너져내리는 사회에 대한 불안보다 이런 내 상태가 더 충격적이고 불안하다.

왜냐하면 무너져내리는 사회에서 새로운 싹은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생명과 그 생명을 지키기위해 올곧이 나를 던지는 것에서 틔워질 것이기 때문에.

오롯이 던져지지 않은 아빠는 오늘도 눈물이 난다.

내 페북에 어제 기재한 글:

딸아이 머리위에 꽃장식을 얹어 놓으니 귀엽고 예쁘다.
'다연이는 꽃이었구나' 라고 얘기해주었다.
다연이 뿐이랴, 세상 모든 아가들이 꽃이지.

꽃과 지내는 나날인데 어찌하여
'힘들어'를 매달며 나는 살고 있을까.
아기때문에, 육아때문에 힘들어서?
그런줄 알았는데 문득 지금 돌아보니
아기로인한 것이 아니라 아기와 육아를 대하는
내 마음이 힘듦을 무럭무럭 자라게 하고 있었다.
힘들거야,힘든거지 라고 미리 세팅해 놓고
대상을 바라보면 아무리 수월한 상태임에도
그 안에서 고된 요소를 반드시 창조(?)하게 마련이다.
꽤나 수많은 장치들이 내 안에 장착되어 있으니
마음이 가벼울리 없다. 아기 패턴은 이래야 해,
놀아주지 않으면 안돼, 이렇게 해주고 저것은 그릇된
방법이고... 모두 다 내가 만들고 구한 장치들인데
이것이 꽃을 꽃으로 보는 걸 방해하는 듯 싶다.
그리구선 '에구, 모가 이렇게 많아. 힘들어...' 이러는거다.

근데말이다,
아가때문에 힘든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알아차려도
나는 내일 '에구 기운 빠져. 힘들구먼'라고 푸념할 듯.
왜냐면 나는 엄마가 된지 겨우 3개월 19일 밖에 안된
풋내기 엄마니까. 3년까지는 투덜거릴테니까!
물론, 그 투덜거림이 진실은 아니란걸 알아두시라.

우리집 제일 이쁜 꽃님은
쿨쿨 자고 있누나...

그이가 경주에 몇일 가있게되었다.
다연이 막내고모의 집을 리모델링해오던 일때문에.
그 마무리 작업이 미처 덜되어 여러차례 오고갔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어제 아침에 넘어가서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은 몇일간 자신의 부재하게 되어 그 미안함을 얘기했었다. 작년에 시작된 그이의 경주행이 길어지면서 더 그러하리라.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하였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나는 나대로 속이 탔고 그는 그대로 미안해하고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 떨구고 싶어했다.

남편이 안심하고 일하러 떠날만큼 내가 다연이를 힘들어하지 않고 보살필수 있다면 그가 미안한 마음을 덜 일으킬수 있지 않을까. 매번 미안함을 안고 떠나는 그가 안스러워 나 자신을 돌아본다.

아침 일찍 떠나면서 소독된 젖병을 세팅해 놓은 걸 그가 없을때 알았다. 마음을 많이 썼음이 비춰진다. 멀리 가도 마음의 흔적을 남겨둔 이 자리에 왠지 오래오래 따뜻한 기운을 서려있다. 아내를 걱정하는 남편의 마음과 딸아이를 위하는 아빠의 마음. 가족을 사랑하는 한 남자의 마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힘이 샘 솟는다~.



105일된 딸아이가 아침잠을 잔다. 어서 아침 일들을 깨기 전에 하고 싶다. 묵은 빨래를 돌리고 세 공간의 먼지를 쓸어내고 놀이매트를 닦고 하는데 아이가 깬다. 열심히 달래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부엌에 눕히고 오르골 모빌을 틀어주면서 연신 설명해 준다. 이불 개고 청소하고 금방 올께~. 아이 범퍼침대에 찌끄러미가 많다. 뭐지? 라고 할 틈 없이 찍찍이로 찍어내 치운다.
오르골이 멈추면 다시 틀어주고 아이가 그걸 보는지 확인한다. 조금은 응시를 하니 다행이다.
논에 간 그이가 집에 오면 출출할텐데 밥이 없다. 씻어 놓은 쌀도 없어서 부엌 바닥에 누워있는 아이에게 연신 설명을 해주며 쌀을 씻고 무거운 김장 김치통을 조심히 옮겨 그 안에서 찌개 재료로 삼을 김치를 꺼내 썬다. 그 사이 불려놓은 콩을 삶기까지 한다. 아이가 칭얼거리고 뒤집으려 징징 거리고 뒤집어져 운다. 달래고 있으려니 가스 불의 콩자반 물이 넘친다. 가스렌즈는 엉망이 되고 설겆이는 자꾸 늘어난다. 이제 아이는 심하게 운다. 결국 콩자반은 완성을 못하고 중단하고 아이를 안아 달랜다. 왔다 갔다. 아, 아이 밥 시간이 가까와지네. 겨우 달랜 아가를 눕히고 분유를 타러가니 또 운다? 그러다 지 혼자 노니 나는 피식 웃음을 짓는데 그게 또 싫은지 울기 시작한 아가. 부랴부랴 맘마를 먹이니 딸아이는 너무 울어서인가 곯아 떨어졌다.
그제야 세탁기에서 꺼내 바닥에 던져만 놓은 어른 빨래들을 널고 부엌에 와서 못다한 콩자반을 만들고 밥을 하고 가스렌즈를 수습하고 설겆이를 조용조용 조심스레 한다.

이게 뭐 하는 건가.

아이를 위해 청소하고 매트를 닦지만 정작 놀아주지를 못해 아이는 불만스레 울고
밥 챙겨주겠다고 음식 좀 하려다 난장판이 되고
집안 습도를 맞춰보겠다고 쌓인 빨래를 했더니 정신이 더욱 없다.
좋으라고 하는 건데 나는 김치국물 튄 바지차림으로 마음이 엉망이 되었다. 자꾸 심술이 나려한다.

논 일 마치고 돌아온 다연아빠는 점심을 먹고 다연이 옆에 쓰러져 자고 있습니다. 둘 다 달게달게 잡니다. 엄마는 달달하게 바라보고 있지요.

온배움터(녹색대학) 온배움과정 담당을 그만두었다. 내가 맡기엔 너무 어려운 자리다. 처음엔 재밌었지만 갈수록 무거워지는걸 느꼈다.

'해야한다'는 하고싶지 않다. '하고싶은' 것이 '할수있는' 일을 하고싶다.

'툭' 던져놓으면 별거 아닌데 왜 그리 잡고 있는건지. 일단 나먼저 던져내려놓자. 그리고 즐거이 처음부터 다시~

여명이 트기전 희미한 불빛아래 아내와 아기의 잠든 모습을 지켜본다. 신기하고 묘하다.

'어제까지는 분명히 없었는데 오늘 뭔가가 나타나 내 삶이 되었다. '

따지고 보면 '지금' 일어난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신기함과 묘함을 설명할 길이 있을까? 이어지고 끊어지고 생겨나고 사라지고 또 이어지는 인연의 이치를.

그걸 내 의지로, 내 의식으로 좌우할 수 있을까.

마흔이 넘은 이제사 겨우 그렇다와 아니다의 두갈래길을 오가며 갈팡질팡하며 걸었던 모습이 보인다.

다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본다. 사람도 세상도 내 안의 감정도.

그 모든 것이 내가 되어 다시 첫걸음을 떼어보고 싶다.

내 생이 다하는 날까지 걷고 걷고싶다.

맑은 하늘과 싱그러운 나뭇잎들, 사랑하는 아내와 신기한 아가.

세상은 이어지고 끊어지고 생겨나고 사라지고 또 이어지는 것.(같다)




비는 내리는데,

모두들 비가 많네 적네, 굵네 가느네 한다.

제 그릇 따라 받아간다는 걸 안다면 비를 탓하랴. 내 쓸만큼 받아가면 족하고 감사할 뿐이지.

그저 비는 왔다가 그치면 그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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