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 
  오욕칠정에서 한시도 헤어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은 늘 작가의 연구 대상이다.
  많은 시인들이 사물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지만
  이승하 시인의 관심사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길 없는 인간이 관심사라 한다"




자연
                (*한산습득도寒山拾得圖를 보고서 지은 듯 하다)

1. 한산자(寒山者)가 습득(拾得)에게
 우리 이 땅에 떨어진 한 개 돌멩이 이니
구르지 못하면 땅에 박혀 있으면 그뿐
강가의 빛나는 돌 부러워하며 살아본들
예쁜 돌 탐하는 사람에게 잡혀갈 뿐이로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던 우리가
인간 속에서 인간의 삶을 살지 않게 되었으니
습득이, 절 부엌에서 부지깽이 잡고 있는 그대가
부처상 앞에서 목탁 두드리는 저 중보다 낫도다.

2. 습득이 한산자에게
우리 이 땅에 떨어진 한 개 풀씨이니
뿌리내리지 못하면 세상 알 수 없지요
아름드리 나무 부러워하며 쳐다본다고 한들
그 밑에서야 제대로 하늘 보며 살 수 있나요
만물이 제각기 만상의 꿈을 꾼다면
외로운 우리 모두 외톨이가 될 밖에요
한사자 님, 저는 한 명 천한 행자에 지나지 않아
님이 가신 길을 늘 뒤따르며 배울 따름입니다.

3. 한산자가 습득에게
돌멩이를 쌓아 만든 탑이나
나무를 베어 만든 집이나
반드시 무너지는 나링 올 터이니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네
허나 내가 만들지 않으면 세상에는 탑도 집도
서 있지 않을 테니 두 은자여
내 강가의 돌멩이, 나무 밑의 풀이 될지라도
살겠네, 자연을 길들이며, 자연에 길들며.




회복기에 아침에

(상략)
꽃나무가 꽃 한 송이 피워낼 때
땅강아지가 땅 한 뼘 기어갈 때
아무런 아픔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머리 센 미친 영감태기에게

미치면 뭘 못해  흰머리 산발하고
취하면 뭘 못해  새벽 강 물살에 뛰어든
저 영감태기는 내 지겨운 남편

사흘 밤낮을 마시더군 도도한 취흥
가슴에 불이 나 저 도도한 강물에다
영감태기 몸 집어던지고 싶었나
돌아버렸지 악착같이 술병은 차고서
건너긴 어떻게 저길 건넌단 말이냐

영감태기 나이 먹을 만큼 먹었고
머리도 이미 셀 만큼 세었어
백년해로는 무슨 망할 놈의 백년해로
눈썹 끝 터럭 한 개만큼이라도
날 생각한다면 할 수 없는 짓

그대는 물을 건너지 마라
그대 물을 건너가다
물에 빠져 죽어버리면
이 일을 어찌할꼬
난 또 누굴 믿고 살아가란 말이냐

철딱서니 없는 영감태기 같으니라고
새벽 강 저 끝으로 그대 보낸 뒤에
내 얼마나 울었는지 말해 무엇해.



* 한산습득도寒山拾得圖
   : 한산과 습득을 그린 선종화.  사찰의 벽화나 선화(禪畵)로 잘 그려져 왔다.
     우리나라에도 고창 선운사의 벽화에, 단양의 구인사 벽화에도 한산습득도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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