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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의 다연이는 하나씩 말을 알아듣는다. 이미 상당한 종류의 말을 이해하는 듯 하다.

~을 가져와라. 쓰레기통에 넣자. 우리 갈까?, 씽크대에 넣어요.

이리와~(이 말을 하면 멀리 도망간다),  ~을 해봐. 등등

 

매일 밤잠을 재울때 두런두런 얘기해곤 한다. 엄마 말을 알아듣지 못할 거 같은 아기때부터 해오던 습관이다.

몇몇 단어를 기억하는 지금의 딸아이에게 깜깜한 방에 함께 누워서 오늘은 이랬지, 저랬지 하며 얘기할때

예전과 다소 다른 느낌이 든다.  사뭇 엄마의 말을 다연이가 왠지 알아들을 것 같은 기분이.

엄마의 소근거림이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오늘 우리 다연이 뭐 했지? 토끼 봤지. 깡총깡총 토끼. 토끼도 보고 노래도 들었지. 판소리라는 거야."

 

어쩔땐 계속 뒤척이기만 할뿐 잠을 쉽게 못드는 다연이를 보면 잠들기를 기다리는 엄마 입장에서는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졸리면 자면 되지'가 안되는 딸아이가 안쓰러울때가 더 많다.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건,  진.정.성.을 듬뿍 담아 말을 건내는 것.

"다연아, 이제 코~ 자자. 코 자고 내일 보자. 내일은 (진짜) 즐거운 날이 될거야."

라고 종종 말해주는 것.  

 

'즐거운 날'

이 단어를 말할때 왠지 가슴이 뜨끈해진다.

아마도 진심으로 아이에게 즐거운 내일을 약속해주고 싶은 심정으로 해주는 말이기 때문일 거다.

"다연아, 엄마가 내일 또 즐겁게 해줄께. 화창한 하늘이 있고 시원한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서 가자.

그러면 너는 새로운 것들을 보고 신기해 하며 기뻐할 거 같아.

네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

그러면 너는 많이 웃을 것이고 무척 뛰어다닐 것이고 많은 것을 느끼며 행복해 할 테지.

엄마는 네가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거든.

내일 꼭 그렇게 해주고 싶어."

라고 할 수 있는 길고 긴 엄마의 심정을 고농도로 압축하여 짜낸 진국의 말이

"내일은(혹은 내일도) 즐거운 날이 될거야"

이다.

 

이 말에 폼한된 의미를 나열해 보자면,

1. 엄마는 네가 내일 즐겁고 행복하길 바래.

2. 엄마가 즐거운 경험들을 만나게 해줄께.

3. 그리고 즐거워 하는 너와 함께하는 것이 엄마는 즐겁고 행복해.

4. 너의 행복한 하루는 엄마의 행복한 하루야.

5. 엄마의 내일도 즐거울 거야.

이 정도가 아닐까.

 

잠들어 가는 아이에게 즐거울 수 있는 내일을 약속해 주는

엄마의 마음은 참 묘하다.

한 존재가 온전히 즐겁고 행복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그 마음 중에 변색되지 않을 최고의 마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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